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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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0.07.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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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 시킨 한권의 책

 

노동문제는 결국 일자리의 문제. 일자리가 있느냐 없느냐로 시작해서 일자리의 기간, 고용 형태, 처우 관계, 합법적 관계 등으로 다양하게 파생하는 것이 노동의 문제다. 이 책은 노동 전반의 문제에 대해 저자가 현장을 다니면서 그들에게서 들은 현실에 대해 자신의 학문적 철학과 함께 고민하고 성찰한 현장 보고서이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결국 민주주의도 사람들 먹고사는 문제로 귀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뜻에서 정치란 일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모두가 집결해야 하는 삶의 귀착지다.

이 세상에 정치와 관련 없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기업적, 경쟁적, 제로섬의 논리는 계층의 극단적 심화를 가져왔다. 청년들의 취업 문제는 그 심각함이 거의 살인적이다. 저자는 말한다.

“청년 문제는 그 자체로 이슈가 되고 정책 사안이 되어야 합니다. 청년 문제는 성장정책, 산업 및 고용구조, 재벌과 중소기업의 관계,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 교육, 경제민주화, 결혼, 출산, 육아, 인구정책 등 연관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광범하고 다층적입니다. 그것은 경제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청년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먼저 정치적 의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 청년 문제는 이렇게 결국 정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싫든 좋든 정치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정치를 떠나선 하루도 살 수 없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모습은 그것이 합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모두 현재 사는 사람들의 정치적 합산 물이다. 이 정치적 장치에 의해 모두가 가해자이며 피해자로 연결된다. 노동의 문제는 물론이고 이 세상에 정치와 관련 없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개인이며 개인은 여럿이 모일 때 힘이 된다. 세상이 바로 가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참여와 연대가 그래서 강조되는 것이다. 남의 일인 양, 지금과 관계가 없는 일인 양 정치를 외면하다 보면 그 무관심으로 받게 되는 대가는 바로 나보다 더 형편없는 놈들에게 지배를 받게 된다는 플라톤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모두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업복을 입었든, 넥타이를 맸든, 현장에 있든, 사무실에 있든 모두 노동자다. 그 노동자가 세상을 끌고 간다. 그래서 노동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고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문제인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개인이며 개인은 여럿이 모일 때 힘이 된다

저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에서 “인류문명의 유적물에서, 역사에 빛나는 전쟁사에서 도대체 그걸 이룩한 사람들, 즉 백성들의 공적은 다 어디로 갔는가.”라며 탄식한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수많은 백성에 의해 발전돼 왔지만, 역사의 기록에 그들은 없다. 현대의 고도산업사회의 눈부신 문명과 경제발전도 결국 노동자에 의해 이룩되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는다.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은 그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몇 줄을 발췌해 인용한다.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다.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만리장성이 준공된 날 밤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치렀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후마니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