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 한편
담쟁이
이경임
내겐 허무의 벽으로 보이는 것이
그 여자에겐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인지도 몰라
내겐 무모한 집착으로 보이는 것이
그 여자에겐 황홀한
광기인지도 몰라
누구도 뿌리내리지 않으려는 곳에
뼈가 닳아지도록
뿌리내리는 저 여자
잿빛 담장에 녹색의 창문들을
무수히 달고 있네
질긴 슬픔의 동아줄을 엮으며
칸나꽃보다 더 높이 하늘로 오른
마침내 벽 하나를
몸속에 집어넣고
온몸으로 벽을 갉아먹고 있네
아, 지독한 사랑이네
<사랑의 아포리즘>
-그대 가슴에 창문을…
사랑은 그대 허무의 벽에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을 내는 일이다. 누가 ‘무모한 집착’이라 말해도, 담쟁이 넝쿨처럼 사랑은 저 수직의 위험한 벽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벽 하나를 온통 ‘몸속에 집어넣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대의 절벽 같은 가슴에 그리움의 창문을 내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커튼을 드리우고, 그리고 그 방 안에 작은 촛불 하나 켜두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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