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김라일락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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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김라일락의 향기
  • 박원 작가
  • 승인 2020.05.21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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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정향나무
정향나무
정향나무

북한산을 올랐습니다.

삼천사에서 계곡을 타고 북한산을 오르다보면 부월동 암문 코스가 나옵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등산로는 다소 험한 편입니다. 나월봉을 거의 올라섰을 때 어디선가 그윽한 향기가 산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그 향기는 도시 공원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라일락향기에 꽁꼬름한 독특한 향이 섞여있었습니다.

  향의 깊이는 가히 인간세계가 아닌 선계(仙界)에서나 맡을 수 있는 그런 향기였습니다. 혹시 길이라도 잘못들어 신선들의 세상에 잘못 들어온게 아닌가 하고 더럭 겁이 났습니다. 얼굴을 꼬집으며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험한 산길에 인적은 없었고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스쳐갔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서쪽에 보라색 정향나무가 가지끝에 매달려 마치 사람을 부르듯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향나무는 털개회나무로도 불리는 토종 라일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가 주위의 라일락이나 수수꽃다리는 모두 졌지만 산지에 자라는 정향나무는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라일락에 비해 한 달은 늦게 만개합니다.

  향기가 강하고 오래가기에 과거 양반들은 이 꽃을 따서 말린 후에 문갑이나 화장대 속에 보관하며 은은한 향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다분히 귀족적이고 품격 높은 향입니다. 

 꽃 하나하나의 모습이 고무래 정(丁)자를 닮아 한자로는 정향(丁香)나무라 부릅니다. 이 라일락을 불어로는 '리라'라고 하는데 노태우 대통령의 18번 곡으로 알려진 '베사메무쵸'에도 나옵니다. 

 북한산의 이 정향나무는 미스김라일락의 원종으로 알려집니다.
해방 후 미군정청 소속 식물채집가인 밀러는 북한산 백운대 아래서 이 종자를 채취해서 본국으로 가져가 심어 가꾼 것이라 합니다. 
12개의 종자를 가져갔는데 그중 7개가 싹을 틔웠고 그중 세개가 키가 작은 왜성종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개량하여 지금 세계시장을 휩쓴 미스김라일락이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거래되는 라일락의 30%가 이 나무라고 합니다. 

 미스김이라 이름 지은 것은 당시 자신의 일을 도와주고 타자를 쳐주던 여직원의 성을 땄다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당시 우리나라 미인대회가 있었는데 최고 미녀로 꼽힌 아가씨가 대부분 미스김이었고 그 이름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미스김라일락은 작은 키에 꽃봉오리는 진보라 색이다가 꽃이 피면서 라벤더색이 되고 만개하면 백옥같이 흰색으로 변신하며 강렬한 향을 내뿜습니다. 추위에도 잘 견디므로 라일락의 여왕으로 통합니다.

미스김라일락
미스김라일락

 어떤 이들은 이 일을 우리나라 식물자원의 무단유출로 보기도 합니다만 당시로서는 그런 개념이 없던 때 였습니다. 우리 땅에 자라는 식물 자원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영국에는 전국에 약 800여 종의 식물이 있답니다. 우리나라는 북한산에만도 700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스김라일락은 기회만 주어지면 온 세상을 휩쓸 자질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이 땅, 이 민족의 혼과 정신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